2020.06.19
합리성
운동을 하고 싶었다. 코나투스가 뚝뚝 떨어졌다. 고민이 되었다. 무릎이 아프니까.
우울해 뒤지나 무릎 아파 뒤지나, 물론 둘 다 뒤질 정도는 절대 아니다.
찬찬히 생각해봤다. 내가 지금 복싱을 가서 잃을 건 병원에 가는 귀찮음과 치료 기간이 늘어나는 거다. 최악의 경우 고질병이 돼서 뻑하면 아프고 가뿐한 무릎을 가지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런 확률은 적으니까. 얻을 건 내 코나투스를 어떻게 다룰 지 삶의 한 방식을 배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가서 졸라 아파지면 다음날 어쩔 수 없이 쉬겠지.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합리적 판단. 이성적 판단이 우선한 삶을 살았다. 당연히 아프면 쉬고 빨리 치료를 해야, 좋아하는 운동 더 길고 오래 할 수 있다는, 이성적인 현명한 일반적인 생각. 멍청하게 악화시킨다는 생각.
근데 그건 ‘미래’를 위해서 사는 보험과 같은 매커니즘의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살아있지 않으면 평생 그렇게 죽은 채로 살다 사라지는 거다. 오늘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일 덜 아픈 무릎을 가지면 행복할까? 이건 너무 극단적인 걸까? ‘더 살아있게 살고 싶다.’ 이 생각은 약간의 이상적인 희망, 좀 더 개념에 가까운 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 좀 목에 칼이 대진 느낌으로 느껴지더니 점점 더 그렇게 살 수록 생각이기 보다 칼이 목에 들어온 것처럼 절박하게 느낌으로 들어온다.
살아있다는 그 느낌을 느낄수록 죽은 채로 사는 공포, 끔찍함도 함께 들어오는 거다.
처음 병원 갔을 때처럼 못 걸을 정도로 아프면 생각도 안 했겠지만, 약 좀 먹고 들 아프니까 아마도 마음이 생기고 몸이 근질거린거다. 체육관에 가서 철학쌤을 우연히 만났다. 무릎 아프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쌤은 엄살이라고 했다. 의사가 괜찮다고 했다며, 별 거 아닌 줄 알았다고.
음, 그렇지 그냥 무리해서 아픈 거였으니까. 어후 쌤 말을 듣고 복싱 하러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찐따 될 뻔 했다.
체육관에 가기 전 다녀와 이 고민을 글로 써 볼 생각을 했었는데, 나는 나름 중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막상 또 복싱 가서 보니 개찐따 같은 고민을 한 것 같아서 부끄러워서 쓰기 싫어졌다. 근데 부끄러워서 글을 안쓰는 건 더 찐따 같은 일이라 쓸 수 밖에 없다.
좀 뛰니까 무릎이 아파졌다. 손목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10번 정도 타격하니까 또 졸라 아팠다. 아픈 건 아픈 거고 몸을 움직이니까 너무 살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씨바 이렇게 살아야지. 내가 느끼는 기분이 고민할 거리 없이 확신을 주었다.
운동하고 샤워하고 10분 정도 걸어서 차로 걸어가는데, 무릎이 아픈데 몸이 그렇게 가볍고 기분이 좋은거다. 기분 탓인지, (과학적으로 호르몬 탓인지도 생각이 든다. 과학맹신주의.)
무릎이 아파서 걷는 게 힘들었는데 다른 몸이 깨어난건지 오히려 무릎의 통증만 딱 떼어져서 일부로 느껴졌다. 모든 신경이 다 무릎 아픈거에만 집중되어서 더 아픈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프로 복서들을 보면, 나한텐 넘사벽인, 취미로 하는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진다. 그래서 철학쌤 책의 마지막에 소중하지 않은 싸움은 없다는 말이 너무 좋다. 쌤의 여러 강인한 모습보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멋있다.
나는 복싱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별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재밌나? 잘 모르겠다. 영상을 하나 둘 씩 찾아보게 되고, 카페를 가입하고 장비를 사고. 최근에 탭볼을 샀는데 끔찍하다. 탭볼하는 내 모습은 상상 속에서도 응시다. 근데 자꾸 꺼내서 하고 있다.
복싱이 재밌나, 계속 생각했는데 복싱도 복싱이지만 쌤이 책에서 쓴 것처럼, 복싱을 하면서 나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배우는 게 좋은가 보다. 앉아서 공부로 배울 수 없는 것 들이다.
NO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