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5
폭력의 고고학 수업 후기
폭력의 고고학 첫 수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폭력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절대 악으로 분류하거나 나쁜 것으로 규정하지 않았을 때 ‘폭력’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들을 구분하고 다룰 수 있는 진여의 시선을 가질 수 있다.
폭력이라고 하면 1차 적으로 물리적 폭력이 먼저 생각이 난다. 나는 폭력은 나쁜 것으로 절대 악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정당한 것으로의 자연스러운 것으로서의 폭력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체벌이 없는 집에서 자랐고, 물리적인 학교 폭력 등에 노출된 적이 없기 때문에, 물리적 폭력 앞의 약자의 무기력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대학 때 많이 맞고 자란 친구가 애들은 패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을 했을 때, 맞고 자란 사람이 때리는 사람까지 된다고 생각하며 폭력에 대한 혐오의 정서를 느꼈다. 폭력은 되물림까지 되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폭력을 당한 사람도 비겁했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머리로 생각하기엔 언제나 모든 일은 손바닥이 마주쳐서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 최소한의 저항은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 장기간의 폭력 앞에 무력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운 좋게 물리적 폭력의 억압이나 피해의 기억이 적어서 이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나는 전사의 기질을 가지게 되었다.
열 대 맞아도 한 대 때린다는 생각이 있다. 맞는 건 맞는 거고 내 몫의 한 방은 먹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자로서 신체적 힘이 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약의 상황에 대한 걱정도 있다. 실제 상황이라면 일단 도망가거나 우선 피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혼자 걱정의 상상을 하면서, 피할 수 없는 시비가 걸린다면 무조건 물불 안 가리고 도구를 써야지 하면서 다짐한다. 근데 그랬다가 내가 너무 과해서 특폭으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까지 하곤 했다.
실제로는 엄청 떨리고 무섭고 막상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다짐을 하는거다.
복싱을 배우게 되면서 상상 속의 폭력을 마주할 일이 생겼다. 물론 운동으로 하는 거니 폭력이라고 명명하긴 애매하지만 때린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코치님과 가벼운 스파링을 하는데 팔을 쭉 펴라고 하는데 팔이 안 펴졌다. 기술적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사람의 얼굴을 때린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불편해서, 코치님이 때려도 괜찮다고 하는데도 팔이 펴지지 않았다.
살면서 누군가의 얼굴을 때려본 적도 없고, 때린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심리적 거부감이 상당해서, 때리려고 마음 먹어도 상대의 얼굴이 맞을 것 같은 순간엔 움츠러 들었다.
상대가 헤드기어를 쓰면 맨 얼굴이 아니라 더 잘 됐다. 확실히 신체적 문제보다 심리적 문제였던 것 같다.
이 문제는 곧 고쳐졌는데, 내가 한 방 맞았을 때였다. 코치님도 처음에는 날 잘 모르고 하니 조심스럽게 하다가, 며칠 후 좀 더 강도를 올렸다. 그래서 내가 한 두 번 좀 세게 맞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내가 쳐 맞게 생겼으니 두려움이고 뭐고 팔을 내지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재밌게 배우고 있지만, 나도 몰랐던 나의 폭력에 대한 절대적인 거부감과 두려움을 보았던 경험으로 남아있다.
절대 악이 아닌 폭력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지 않다고 하니, 자연스러운 폭력은 어떤 모습일지 앞으로의 수업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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