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6
자기만족
글을 쓰면서 인식한 게 하나 있다. 나는 성질이 더럽다고 생각하는데. 이 말은 왜했지. 어쨋든.
분노가 일면 머릿속에 잔상처럼 드는 생각이 있다. 가끔 조폭 영화에서 너무 잔인해서 모자이크 처리되어서 나오곤 하는데.
푸욱 쑤시는게 아니고 짧은 칼로 파파팟팟 찌르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누군가를 그렇게 해치고 싶어진다. 물론 사회화가 되었기 때문에 실행하진 않겠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한 켠으로 괴롭다. 해치고 싶은 욕망이 든다.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을 때 운동을 간다. 운동을 가서 조지면 힘이 느껴진다.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 칼 대신 뚜까 패고 싶다. 뚜까 패고 싶어지면 강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럼 안 패도 될 것 같은 느낌과 진정이 되고 안정감이 든다.
내가 약해서 비열하게 칼을 쓰고 싶었던 거겠지. 해치고 싶은데 약하니까 비열하고 더 잔인해지고 싶어지나 보다.
약해서 머리도 존나 굴리면서 산 거 같다. 지름길 혹은 한방에 해결하고 싶어서.
내가 예민한 것도 안 좋다고 생각해서 섬세함으로 바꾸고 싶다. 내가 약하다는 걸 안 것이 자기만족 중 하나인 것 같다.
내 자신이 약하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웠는데, 인정하고 나니 그냥 현재의 내가 약하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 지점부터 진짜 나의 힘을 쌓아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약한 걸 받아 들일 수 없게 약했었는데, 이제야 힘이 좀 생긴건지 약한 사람이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에 그렇게 강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강한 사람이 아니고 사실은 다 약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엔 약해서 약한 척하고 사는 사람, 약한데 강한 척하는 사람만 많은 것 같다. 강해서 강하게 사는 사람이 참 드문 것 같다.
강한 척 센 척 안하고 그냥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 만큼 만큼만 내 힘인 걸 아는 것에 대한 만족이 스피노자의 자기만족인 것 같다.
그것 만큼은 불안하지 않은 힘이라 좋다. 그 힘 만큼만 내게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가 참 좋다. 그런 여유가 더 많이 생길 수록 좀 더 강해지고 유연해지겠지.
다른 삶에 있어서는 꽤 다층적이고 다질적인 복잡한 요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운동은 참 정직해서 딱 내가 한 만큼이라 내 위치를 참 알기 쉽다.
지름길도 없고 묘수가 통하지도 않는다. 특히 복싱은 신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많이 개입되어 있는 운동인 것 같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참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내가 공중누각으로 쌓아 올렸던 나의 거만을 다 버리고 싶다. 바닥부터 쌓아가고 싶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것. 그게 나라는 사람의 다 다.
‘온갖 허물과 단점 투성이인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때 우리는 자기만족을 회복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밝음뿐만 아니라 어둠마저도 긍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황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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