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 위의 질주

 

2022.09.25

 

허공 위의 질주

 

나는 대단한 대의를 위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경직된 사람이라 신념이라는 것에 무게를 많이 실으면서 살았다.

정돈되지도 않고 뭔지도 모르지만 뭔가 내 신념을 가지고 세상과 타협하고 살고 싶지 않았다.

 

사소하지만 회사에서 왜 반바지를 못 입게 하는지, 휴가를 쓰는데 왜 눈치를 보게 하는지, 왜 여자한테 어떤 역할을 강요하는지.

다들 다 잘못된 거 알면서 세상이 원래 다 그렇다며 나를 나무라는지. 그걸 결국 내가 따라야 하는지.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면,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뭔지 잘 모르지만 자유롭고 싶었고,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10년 전에 남겨 둔 글에는, ‘저는 세상과 타협하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신념을 지키며 꿈을 지속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라고 적어놨다.

지금 보면 신념이 뭔지, 꿈이 뭔지, 용기가 뭔지 다 재정의 해야 하는 귀여운 20대의 치기로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 남들처럼 그렇게 순응하고 살고 싶지 않아서 이것저것 방법을 찾으며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살다 보니까, 잘 몰랐던 것도 많고 내 한계도 많았다.

 

그렇게 남들과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직장의 피라미드가 싫어서 창업을 했는데, 창업을 해도 회사 피라미드에서 결국 나는 착취 구조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좌절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착취해서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 볼 것 인가를 생각했을 때, 나는 너무 지쳤고 결국 나도 똑같이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 싶어 좌절했다.

내가 가진 여러 다른 문제도 많았지만 길을 잃어서 어디로 갈 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서 우울하고 죽고 싶고 무기력해졌다.

 

나는 경직된 사람이라 항상 비겁한 것에 대해 모순된 것에 대해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자기파괴적으로 된다.

어떠한 것을 바꾸는 건 혁명적인 면이 있는데 이전에 내가 봐온 혁명들이나 정의들에서 다른 경우의 답을 보지 못했다.

 

잘못된 거 알고 옳은 방향으로 힘을 실어야 하는 건 맞는데, 결국 다 파괴되는 걸 보고 있으면 그건 또 앞으로 나가는 방법이 아닌 것 같고 답을 모르겠는 문제였다.

이 문제의 답은 그런 경직된 혁명 대신 욕망이 혁명적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찾던 그 뿌연 두루뭉실한 그 무언가가 철학을 배우면서 욕망이라고 말해주었을 때 여전히 두루뭉실했다.

재능은 욕망입니다. 사랑 = 욕망 입니다. 무슨 그 수학 공식처럼 이해는 못하는데 외워버린 그런 것이 되었다.

차츰 가시거리가 조금 더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아직 잘 모르겠다. 욕망은 축제가 아니라는 들뢰즈의 말을 다시금 되뇌인다.

 

언젠가 철학쌤이 그런 말을 했다. 자본주의 밖의 그 무언가를 이야기 하면서 자본주의 다음 세상을 이야기하면서 그게 우리 세대에 완성되길 바라는 건 욕심인 것 같다고.

그 때 더 크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 흐름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더 작은 역할이 되었지만 그 흐름이란 것이 크니까 내가 더 커진 것 같았다.

 

그저 그렇게 살다 갈 거라는 걸 아는데
그저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이 무섭다
그저 그렇게 살다가도 괜찮은데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두렵다.

이렇게 적어 놓은 10년전 내 글을 봤는데, 지금 읽어봐도 바꿀 건 없는데 의미가 완전히 새롭다. 회의주의 비관주의 허무주의 글이 었는데, 지금은 다 알맹이가 있다.

다 다른 의미로 느껴진다. 예전엔 내 삶이 너무 중요해서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해서 더 무겁고 죽고 싶고 그랬나 보다.

 

‘혁명은 미완이어야만 비로소 완성된다’라는 말이 너무나 멋있다. 그렇게 내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완임을 인정 했기에 완성된 혁명이라니.

그렇지 그게 혁명적인 것이지. 권력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혁명은 이 시대에는 낡은 논리가 된 것 같다.

 

[철학 수업에서 배운 내용]

허공위의 질주(Running On Empty,1988) 

by 황진규의 철학흥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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