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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기억들

상처받은 기억들

 

2023.01.13

 

상처 받은 기억들

 

  조소를 하다보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 이거 좋아하는 구나 하고 생각하고 보니, 언제나 이런 만드는 쪽을 하고 있었네 싶다.

  결과론적인 시선이지만. 나 왜 이거 안하고 살았지 하고 생각해보았다.

 

 문득 생각났다. 중학교 때 미술 수업 시간에 찰흙으로 컵 만들기를 했다. 만든 컵을 들고 교실 뒤에 일렬로 서 있으면 미술 선생님이 평가하는 거였다. (방식도 참 폭력적이네)

 그 때 내가 비 마이너스인가 씨를 받아서 충격을 받았다. 미술은 언제나 자신 있는 과목이었다. 뭐 그래 내가 잘 못했을 수도 있지 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반 반장이었던 친구가 에이쁠을 받았다. 아 씨발 존나 못 만들었는데? 내가 비 받은건 그렇다 쳐도 저거를 에이쁠 을 주는 건 말이 안된다고 명확히 생각될 정도로 못 만들었다.

 

 그 때 예체능 점수를 너무 남발한다고 상대평가가 시작되어서 점수 비율이 정해져 있도록 시행한 해였다.

 아 컵을 잘 만드는 건 아무 소용이 없구나, 돈이 많으면 미술 점수도 잘 받고 그러면 평균 공부 점수도 잘 나올 거고 어차피 그거 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잘사는 친구가 공부도 잘하고 반장도 하고 심지어 미술 점수도 잘 받아가는 구나. 감히 어찌 돈 없이 미술 할 생각을 할까.

 

 나는 아직 무언가 더 배우고 싶어도 학교를 다시 가고 싶진 않다. 학교 라는 그 형태가 남아있는 곳은 진저리 난다.

 선생이 뭔데. 나보다 뭔가 미리 안 거 말고 뭐가 있는데. 미리 안 거 알려주는 것 이상으로 권위적이고 규율적인 곳은 내 발로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존경은 받는 거지 요구하는 게 아니잖아.

 

내가 과도하게 확대 해석을 하고 있나?  내가 기억하는 것들이 일정 부분 상상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되짚어 보았다.

 슬프고 싶어서 기억들이 올라오는가? 자기연민 일까 생각해 봤는데. 오히려 나는 요즘 좀 다져져서 살만한 것 같다.

 그래서 슬프고 싶은 것 보다 내가 이제야 준비가 되어서, 나도 모르게 억압해 놓았던 슬픔의 기억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떠오르는 것 같다.

 

 어릴 때 아파트 바로 맞은편이 학교였는데 가운데 화단이 있는 초등학교였다. 1층 현관을 들어갈 때면 난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날 가져가야 할 물건을 빼먹었을까봐.

 신발주머니 까 먹는게 항상 공포였던 것 같다. 그냥 그 때의 마음이 문득 사진처럼 선명한 학교의 모습과 떠올랐다.

 나에게 학교는 슬픔이 더 많은 공간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집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급식비 지원을 한번 받은 적이 있었는데, 등록금 지원이었나. 어쨌든 그렇게 큰 돈이 아니었는데 집이 좀 힘들어서 받기로 했었다.

나름 선생님이 조심한다고 복도로 불러서 서류 같은 거 사인을 받았나 했는데, 다시 교실로 들어갔을 때에 말로 표현 못할 그 분위기가 생생히 기억난다.

뭐랄까 그 조용해진 분위기. 복도로 부르면 당연히 무슨 일인가 궁금하고 긴장 탈 중학생 아이들이었는데. 말하진 않지만 모두 아는 그 분위기 자체에 위축되었던 것 같다.

 

( 언젠가 수업에서 철학쌤이 무상급식 정책 이야기를 하면서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말을 왜 아무도 안 하냐고 말했을 때, 고마웠다.

과거의 내가 위로 받은 것 같다. 내가 그 때 그걸 알았다면, 돈이 많은 게 부끄러운 거라고 누가 그렇게 말해줬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

 

 입시 때 미술 학원을 다녔는데, 방학 특강 때는 수업을 하루 종일 하니까 학원비가 많이 비쌌었다.

원래 다니던 대형학원에서 내 담당 선생님이 나와서 새 학원을 차려서, 나는 그 선생님 따라서 학원을 옮겼다.

 

입시학원비가 큰 돈이어서 돈을 준비하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어느 날 수업 끝나고 다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돈이 없으면 부모 자격이 없는 거라고 자식이 공부하는데 학원비를 제때 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말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부모 자격이라는 단어를 말한 건 기억이 난다.

그게 나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가슴이 쿵쾅거렸다.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그 선생과 나는 아는 이야기니까.

 

 그 때가 고3 19살이었으니까 나도 생각할 수 있는 나이어서, 시발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그 선생님이 지금의 나보다 나이가 어렸었고, 새로 차린 학원에 얼마나 불안했을까 이해가 된다.

 초조함에 여유가 없어져서 상대를 생각 못한거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이건 선생이 틀린 거 같다고 말하고, 엄마랑 얘기하고 나서 나는 못 참겠으니까 가서 말을 해야겠다고, 사과를 안 하면 때려치겠다고 했다.

 엄마가 홍대에 있는 학원에 차로 데려다 줬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생각했지만, 상담실에 둘이 마주 앉았는데, 그 때 나는 입이 안 떨어진다는 말을 정말 실감나게 느꼈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을 마주 앉았는데 정말 시간은 째깍째깍 가는데 입이 본드로 붙었는지 떨어지지가 않아서 한참을 침묵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떠뜸떠뜸 말했다.

 

 어느새 선생님의 눈도 시 뻘개져 있었다.

 나는 그렇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았다. 자존심에 안 울려고 온 얼굴의 근육을 있는 힘껏 썼던 게 기억이 난다.

 

 이것 말고도 너무 많은 사소한 기억이 난다. 문득 문득. 나는 한편으로 내가 상상한 기억이길 바랐다.

상상이라고 밝혀지길. 단지 상상이었다면 그것만, 그 상상이라는 관념만 고치면 해소될 테니까.

되짚을 수록 더 생생한 사실임을 확인하고 있으니 더 씁쓸하다. 그래 그랬었지. 어떻게 돈이 무섭지 않겠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지금 내가 먹고 살만 하니까. 그 때처럼, 누군가처럼 지금 내가 부의 차별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란 것도 생각한다.

 그 차별 아래에 있으면 아무 것도 못할 것이라는 무력감이 느껴진다. 결국 나도 일조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 

 

 자본주의 체제와 싸운다는 말. 내가 미워한 그 사람 때문도 나를 미워한 그 사람 때문도 아니란 걸.

 동시에 그렇지만 거대한 체제 앞에 손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결국 나도 살만해서 그런 소리 하고 있는 것 같은 것 같은 부채감.

 

여기까지 가면 생각이 뱅뱅 계속 돌아서 생각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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