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사랑하는 수행

내 조소 작업은 단순한 형상을 만들거나 재현하는 것을 넘어,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내가 느낀 그 사람을 담아내는 과정이다.

이 작업은 그 사람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 사람의 외형이나 특징을 떠올리지만, 작업을 이어가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느낌이 자연스럽게 내 안에 스며든다.

시간이 흐르며 내 손끝에서 형상이 잡혀갈 때 쯤, 나는 그 사람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오래 보아야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마음으로 느꼈다.

 

처음엔 그저 익숙한 얼굴일 뿐이었을지라도, 작업을 통해 그 사람의 미세한 디테일과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간다.

작업을 하면서 나는 더 그 사람의 그 순간을 더 살아있게 가장 생생하게 포착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긴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 코, 입 같은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이름 붙이기 어려운 작은 디테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눈에 잘 띄지 않던 작은 부분들, 예를 들면 눈가의 주름, 입가의 미소, 광대의 미세한 굴곡, 애굣살의 끝 부분 같은 사소한 부분들이 모두 그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임을 깨닫는다.

그때마다 나는 그 작은 디테일들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형태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얼굴은 단순한 기관들의 조합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어깨나 목 같은 부분이 달라도 그 사람 같지 않으며, 얼굴만으로는 그 사람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한 사람을 전체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만이 가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그 사람만의 자연스러운 느낌이 날 때까지 작업을 한다.

 

내가 얼굴에서 작은 디테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듯이 그 사람의 삶의 디테일의 아름다움도 발견할 수 있을까.

문득 별 특별하지 않게 지나간 시간  속 함께 했던 그 순간에 너는 빛이 났고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내 작업은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시선과 관점을 바꿔 놓는다.

처음엔 내가 그를 관찰하고 느끼는 과정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며 내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애정을 담아 그 사람을 바라보고 시간을 쏟으면, 내 안에 있는 시각 뿐만 아니라 그와의 실제 관계 또한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관계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 그러하다는 것을 경험한 순간 나에게 강렬한 깨달음을 주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관계는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것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체감했다.

나와 너가 따로 떨어져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인지에 따라 상호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을 들여 한 사람을 깊이 생각하고 이해해보려 하면  연결되어 있기에, 나만의 변화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나에게 예술 작업이라기 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의 수행이라고 느낀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작업을 하며 한 사람을 계속 바라보면서 조각으로 표현하다 보면 나는 조금 더 따뜻하고 애정 어린 사람이 되어간다.

이렇게 누군가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사람만의 고유한 본질을 찾아내고자 하는 작업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이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매번 변화하고 성장하고, 그런 변화들이 관계 속에서 다시 발견 될 때 의미 있다고 느낀다.

 

관찰과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을 지나다 보면, 나는 점차 그 사람의 외형을 넘어 그의 내면과 삶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단순한 사실로만 알고 있었던 그 사람의 과거, 그가 겪었던 외로움과 절박함, 그 모든 시간들을 좀 더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다.

조소 작업을 하면 그 때의 감정과 시간을 자꾸 떠올리게 되어 그의 삶에 들어가서 생각해보게 된다.

때론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하며 ‘왜 그럴까?’라는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을 만들면서 나는 점차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작업을 하다 보면 ‘아! 그냥 그랬구나. 그런 거였구나!’ 라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다 알진 못하겠지만 그냥 받아 들여지는 느낌이다.

그 시간을 함께하며 내가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고 이해해보려 하는 것이, 꽤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좋은 느낌으로 그 대상과의 관계도, 그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그리고 나 자신도 바뀌게 된다.

 

조소 작업은 나에게 있어서 단순히 재현이 아니라,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며 마음을 쏟는 이 시간이 나에게도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주며, 내 삶을 무겁게 한다.

 

Sculp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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