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과 나
이동시 X 생명다양성재단
동물 이야기 7분 스피치
2025년 9월 27일


낭독사진들


개볼락의 떨림
신윤정
여름을 맞아 아버지의 고향인 동해 바다에 갔다.
바닷속은 언제나 낯설고도 경이로운 세계다.
스노클링을 할 때마다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온몸을 감싸는 차가운 물, 파도와 흔들리는 물의 움직임,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속으로.
물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 순간, 나는 내가 알던 일상의 세계를 벗어나 전혀 다른 생명들의 영역에 들어간다.
나는 물고기들을 따라다니며 바다의 리듬에 몸을 맡겼다.
큰 물고기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눈이 마주친 순간, 낯선 존재와의 교감이 어색하지만 강렬하게 스쳐 갔다.
인간이 아닌 존재의 시선을 마주한다는 건 묘한 긴장과 떨림을 준다.
나는 흥분해서 엄청 큰 물고기를 만났다고 소리쳤다.
얕은 바다를 관찰하다 바위틈에서 개볼락을 만났다.
작은 뜰채를 들고 숨바꼭질하듯 따라다녔지만, 개볼락은 요리조리 피하며 나를 놀리듯 사라졌다.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잠시 멈추어 낯선 존재의 움직임을 매우 집중해서 지켜보았다.
바닥에 붙어갈 때는 느리고 앞으로만 나아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제야 앞길을 가로막듯 뜰채를 대었고, 마침내 잡을 수 있었다.
뜰채 속 개볼락을 손으로 움켜쥐는 순간, 소름과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좋으면서도 징그럽게 느껴지는 그 감각은 어른이 된 나의 양가적 마음을 드러냈다.
도시의 빠르고 건조한 삶에 익숙해진 나는 생명을 대하는 일이 낯설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마구 되살아났다.
자연 속에서 물고기와 곤충 같은 동물들과 함께 마냥 신기하고 호기심 넘치고 교감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새로운 물고기, 새로운 곤충을 만나는 것이 큰 기쁨이었던 날들.
프루스트가 홍차와 마들렌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듯, 개볼락의 꿈틀대며 미끈한 촉감이 나의 잃어버린 기억들과 감정을 되살려 주었다.
다시 아이가 된 마음으로 주변의 아이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구경한 뒤, 조심스럽게 개볼락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
개볼락은 금세 넓은 바다로 사라졌지만, 그 떨림은 내 안에 여전히 생생히 남았다.
며칠 뒤 도시로 돌아와, 비 온 뒤 보도블록 위에서 지렁이를 만났다.
예전 같으면 지렁이를 만지는 것이 무서워 나뭇가지를 집어 들어 옮겼겠지만,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손으로 잡아 올렸다.
꿈틀대는 몸짓은 여전히 조금 무서웠지만, 동시에 살아있는 에너지가 내 손끝을 타고 들어왔다.
그것은 더 이상 징그러움이 아니라, 생명의 떨림으로 느껴졌다.
나는 ‘살아있음’을 주제로 시각예술 작업을 해왔다.
나는 그동안 내 안의 살아있음만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 크게 깨달았다.
진정한 생명력은 나를 둘러싼 자연, 우글거리고 넘쳐흐르는 다른 생명들과의 교감 속에 있었다.
개볼락과 지렁이와의 만남은 내 안에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그 에너지를 작품 속에 담고 싶어졌다.
그렇게 표현하면서 내 안의 생명력도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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