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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X혜민] 윤정 작품 관련 대화록

[윤정X혜민] 윤정 작품 관련 대화록

[윤정X혜민] 윤정 작품 관련 대화록

2024년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동안 덧붙여간 우리의 대화록

 

[Sculptures]

혜민: 이 얘기부터 해야겠다. ‘인간을 사랑하는 수행’ 글 너무 좋았어. 써 줘서 고마울 정도였다. 네가 7-8달씩 조소 작품에 매달리고, 디테일 하나 수정하는 데 1달 걸리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지? 기준이 높아서 그런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지. 그 질문에 대한, 너무나 너다운 답이었어. 내가 지켜본 너는, 티내지 않지만 사람에게 상처도 잘 받고, 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고 느꼈거든. 또, 너는 예술가이자 탐구자 같은 면모가 있고. 그래서 그 사람을 조소작품으로 만들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느끼는 게 너무나 너다웠어.

윤정: 언니가 종종 조소에 관한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잘 답하지 못했던 거 같아. 나도 뭘 하고 있는지 잘 몰랐거든. 무언가 느껴지고 무언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생각이 정리되고 언어화되지 못해서 입 안에서 뭉글뭉글하기만 한 느낌이었어. 시간이 지나서 어느정도 과거가 되고 나서 전달할 수 있게 되었어. 의미는 항상 사후적 해석만이 가능한가 봐.

 

혜민: 너에게 소중한 사람을 작품으로 만들면서, 사소한 부분들이 그 사람을 이루는 꼭 필요한 요소라는 걸 알게 된다는 것도 참 좋더라. 그렇지, 그게 생명이 있는 존재의 아름다움이지. 그리고 사소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게 되는 게, 그 사람이 나에게 대체불가능해지는 과정이지.

윤정: 맞아. 내가 원하는 그 사람의 대체불가능한 고유한 느낌이 있는데 그게 나올 때까지 멈추지 못하는 것 같아. 예를 들면 눈가의 아주 작은 양의 주름이 그 사람의 분위기, 뉘앙스를 확 전달하는 경우가 있거든. 그걸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거지. 그 아주 작은 양을 표현해 낸 그 순간 ‘그 사람’으로서 살아난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러자마자 입가의 작은 양이 또 거슬리겠지.ㅋㅋ 우리는 사람을 볼 때 눈, 코, 입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직관으로 전체를 느껴. 심지어 얼굴이 비슷해도 승모근이 다르면 그 사람 느낌이 안 나.

혜민: 그 사람을 관찰하고 느끼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의 과거, 그가 겪었던 외로움과 절박함을 이해하게 되고, 그게 그 사람과의 실제 관계를 변화시킨다는 부분도 정말 좋았어. 주체로서 객체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하다가, 종국에는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 말이야. 어떤 이는 조소작품이 그 사람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고정시킨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너는 ‘그 사람의 순간’과, ‘그 순간에 담긴 과거의 모든 과정’을 표현하려는 것 같더라.

윤정: 해석이 너무 멋져서 좋으면서도 부끄러운 걸. 무언가 담고 싶다는 마음이 있거든. 더 그 사람 같으면 좋겠는. 그냥 뭐랄까, 정말로 내 주관적인 느낌이 있거든. 그게 잘 안 되니까 모든 수를 동원하다 보니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과거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걸 막 생각해. 어떤 느낌을 잡을 수 있을까 싶어서. 잘 모르겠다 싶으면 모르는 채로 표현될 것 같은 우려도 있고 그래.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한 세계가 온다는 말이 있잖아. ‘작업을 하면서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세계를 다 알아야 하는구나!’ 싶더라고. 너무 어마어마해. 그래서 나는 모른다, 알 수 없다의 상태야. 그런 걸 깨닫고 나니, 예전의 내가 진심이나 마음, 진실 같은 것을 언어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너무 쉽게 생각한 거였어. 오히려 오해의 껍데기만 더 많이 생겼던 것 같아. 그래서 요즘은 진실을 말하는 대신 오해의 시간을 상쇄시킬, 상대에게 좋은 껍데기인 채로 기다리려고 해.

혜민: ‘기다린다’는 말이 좋아. 내가 퇴사 후 2년 동안 제일 많이 배운 게, 말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중요하단 거였어. 상대방이 조심스럽게 꺼내 줄때까지, 나와 상대방의 틈이 동시에 열릴 때까지. 그 때까지 많은 오해를 견디면서 말이야.ㅋ 우리, 비슷한 걸 느끼고 있네.

너도 그 틈이 열릴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해 고민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거겠지. 오래 작품에 매달릴 수밖에 없겠네. 게다가 너 힘들 정도로 오감이 살아 있는 편이잖아. 예전에 네 글 읽었을 때, 서체 수업에서 활자 똑같이 그려오는 과제가 있었는데, 견본 서체 끝부분이 종이 엠보싱 때문에 약간 눌려서 샤프심을 깎아서 그것까지 그려갔다는 거 보고 흥미로웠어.

윤정: 어떻게 표현해야 전달이 될지 모르겠는데, 보통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게 보이니까 기준이 높아져 버린다고 해야 하나. 그냥 나는 그게 보이고 느껴지니까 그렇게 하게 되는 거 같아.

내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완벽의 이데아에 집착하는 건지 생각해 본 적 있거든. 작품하면서 지금까지 정리된 내용은, ‘완벽의 이데아보다 그 존재에 대한 열망이 더 크다면 문제될 게 없겠다’였어.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그 시간을 담고 과정을 담은 작품이라 좋거든. 완성작이라기보다 완료작으로서 좋다고 해야 하나. 아마 완벽에 집착했으면 부수고 다시 만들지 않았을까? 그러면 엄청 피폐해졌을 거야.

혜민: ‘완벽의 이데아보다 그 존재에 대한 열망이 더 크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말, 좋다. 잘은 몰라도 고대 조각가들도 혼을 불어넣는다는 느낌으로 조각을 했을 것 같아.

그나저나 계속 더 높은 곳만 보이는 예술가의 마음은 참 마음 편할 날은 없겠지만. 어떡하냐, 그런 성향은 잘 안 변하는데… 그냥 받아들이고 열심히, 집착하면서 해라.ㅋㅋㅋㅋ 넌 어차피 대충 만들면 만족감을 못 느낄 거야.ㅋㅋㅋㅋ (먼산)

윤정: 맞아. 나는 아직 그걸 온전히 긍정하는 지 모르겠어. 좀 저주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걸 긍정할 수 있는 삶의 맥락을 만들어 가는 게 인생 과제일 듯.

혜민: 가볍게 말하긴 했지만, 누구나 다 지니고 있기에 골치 아프고, 때로는 나나 타인을 고통에 빠지게 하는 성향이 있다고 생각해. 폭력성, 중독성향, 불안, 예민함 등등. 그런데 그런 성향들이, 그 사람의 힘이나 매력이 되기도 하더라. 만약 그 기질을 빼 버리면, 신윤정은 신윤정스럽지 않고, 김혜민은 김혜민스럽지 않을 거야. 네가 실재하는 사람을 조소작품으로 만들면서, 사소한 부분 하나가 빠지면 그 사람의 느낌이 안 나는 것처럼!!!

윤정: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참 멋있다. 그게 되면 자기만족의 감정이겠지? 하나의 특질에 어둠과 밝음은 동시에 있는데 나도 그걸 잘 볼 수 있게 되면 좋겠어. 배운대로라면 그게 긍정되는 배치에 나를 놓는 게 좋겠지.

혜민: 오감이 예민한 게 일상생활에서 불편하기도 하고, 남들은 안 보이는 게 나만 보이니까 외롭기도 했을 거야. 하지만 어느 날 그게 사라지면, 엄청 서운할지도? 그 예민함 때문에, 네가 만들 수 있었던 작품들, 네가 배운 것들, 교감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리고 ‘남들에게 안 보이는 게 나에게는 보이는 느낌’은 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도 같아. 나에게 잘 보이는 게 무엇인지는 좀 차이가 있을 뿐이지. 들여다보면, 무난하고 정상적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어쩌면, 우리 모두 ‘나를 나이게 하는 점’, ‘좀 지랄맞지만 꽤 괜찮을 때도 있는 점’을 누군가가 간절히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모두 조금씩 저주에 걸려있을지도?

윤정: 맞아. 자의식과잉을 벗어나서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내가 알지 못했던 것뿐이지. 저주를 푸는 건 사랑???

혜민: ㅋㅋ 저주를 푸는 건 사랑! 그 찰나의 기적 같은 순간을 위해, 수행!

 

[야생성]

  

혜민: 우리가 첫 공동작업을 하게 만들어 준 소중한 작품! 사실 김윤신 개인전 다녀오고 나서 대화록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가, 네 작품 얘기가 나와서였어. 김윤신 작가 작품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네 작품 얘기를 하게 된 그 흐름이 너무 좋았거든. 마침 나도 박신양 전시와 글 보고, ‘야생성’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던 때라.

그 때 사람의 야생성이 점점 퇴화되는 것, 본능이나 직관의 영역이 점점 줄어드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할 때였어. 사람이 살면서 자신을 확장하는 경험을 많이 해 봐야 희열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나는 조그만 방 안에서 컴퓨터로 서류 작업하는 게 일이었으니까. ‘전문가, 효율적 분업’이라는 미명 하에 나를 가두는 상자가 점점 쪼그라들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느낌이었어.

윤정: 나도 그런 비슷한 생각 많이 했어. 예전에는 뭔가 ‘정제된 것들, 기술’이 좋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요즘엔 거친 게 좋더라. 날 것의 느낌?

최근에는 ‘살아있음 alive’에 대해 많이 생각해. 아직 너무 포괄적인 느낌이지만, 앞으로 나는 그걸 표현하고 그걸 잡고 살면 되겠다는 생각이 확정되었어. 오랜 허무주의에서 의미를 느끼게 되어서 좋아.

복싱에서 잽을 맞추거나 거리를 잡은 그 순간에 뒷손으로 후려쳐야 하거든. 그 때 긴장되지만 큰 에너지를 느꼈어. 바로 그 순간에 긴장되고 짜릿하지만, 스릴과는 달라. 내가 살아있다는 힘? 야생성? 그런 게 느껴지는데, 말로 하기가 어려워서 작품으로 해 봤어. 그런데 작품으로도 다 표현이 어렵네, 하하.

그 순간의 눈빛, 느낌을 표현해 봤는데 무언가 느껴지는 에너지를 표현하려고 하다가 캔버스의 틀이 답답해서 한쪽을 부수어 봤어. 강렬한 그 느낌을 표현해 보고 싶었거든.

혜민: 돌출되는 에너지를 캔버스를 부수어서 표현한 게 좋았어. 지난 번에 간 필립파레노 전시에서 전시회장 중간에서 벽이 움직이잖아.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 전시회장에서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벽’이 움직이면서 관객의 시야를 바꾸는 게. 이 캔버스를 부순 것도, 2D가 표현되는 프레임 자체를 바꾼 거라서 편견을 깨 줘서 좋아.

윤정: 나도 그게 인상적이었어. 보통 움직이는 작품은 있어도 공간은 고정되어 있는데.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중요시한 전시라 공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었을 거야. 보통 전시공간은 관람자가 조용히 보기만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있잖아. 그렇게 작품이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관람자인 우리의 움직임도 이끌어 내는 역동적인 게 좋았어.

혜민: 순수한 호기심인데, 이거 망치로 부순 거야?

윤정: 응, 망치로 했어. 생각보다 그냥 확 내리쳐서 우연히 적당히 적합하게 원하는 모양으로 부수기 어렵더라.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려고, 무엇인가 받치고 아주 조심스럽게 부셨어. 이 표현은 참 아이러니하고 기만적인 것 같아. 강렬한 느낌을 전달할 목적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캔버스의 찢어짐 정도도 조절해 가며 만든, 굉장히 의도된 거야.

혜민: 기만적일 것까지야! 어쨌든 작품은 타인이 본다는 걸 전제로 하니까, 타인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는 건 자연스럽다고 생각함!

그나저나 최근에도 ‘야생성’에 대한 테마를 가지고 기획하고 있는 것들이 좀 있나? 레슬링 새로 시작하고 흠뻑 빠져 있는 것 같아서, 뭔가 더 느꼈나도 궁금하고.

윤정: 야생성이랑은 좀 결이 다른 것 같긴한데. 그냥 좀 더 살아있음 alive에 집중하려고 해.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게 해주거든. 그래서 요즘 어딜 가든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사실 열심히 하는 게 아니거든. 그냥 내가 좋아할 만한 걸 좀 더 잘 찾게 된 것 같아. 그게 좀 야생성에 가까워진 걸까?

혜민: 기를 쓰고 자신을 채찍질해서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게 되어서 저절로 열심히 하게 된 거네. 그냥 끌리는 거, 효율 덜 따지고 일단 해 보는 거니까 야생성에 가까워진 것, 맞고! 좋네.

 

[감정들]

혜민: 이 작품 아이디어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 한 캔버스에 여러 감정을 그려냈다는 게 재밌고, 대비되는 색이 많이 쓰였는데도 산만하다는 느낌이 안 들었어.

윤정: 어떤 사건을 마주해 무언가 감정이 올라올 때, 한 가지 감정만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감정이 하나라면 너무나 심플하게 인생을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어떤 사건이 있었을 때 따라오는 감정들이 상반되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뒤섞여 버려서 분열되는 경험이 있잖아. 그것 자체가 감정의 속성인 것 같더라고. 언제나 감정은 뒤섞여 오지. 감정을 명명하는 것은 그 감정의 뭉텅이를 해부하고 분석을 위해서 존재하는 건데, 그걸 어떤 감정 하나로 귀결시키고 정리해버리는 데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

혜민: 완전 공감가는 얘기야. 감정, 경험, 사람 모두 이해하고 해석하기 쉬운 형태로 단순화해 버릴 때 큰 문제가 생기는 듯. 모순되고 마찰하는 조각들이 모여서 하나를 이루고, 그 모든 조각들이 계속 변하고 있는데, 그걸 이해하려는(이해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야. 그걸 이해하려는(이해받으려는) 노력은 무지하게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긴 하지만.ㅋ

윤정: 맞아 그리고, 어느 순간 어떠한 감정을 너무 많이 해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그런 분석이 과도해지면 더 이상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 너무 모를 땐 ‘감정 쓰기’도 하고 감정도 배우고 실타래도 풀어보고 하는데, 그걸 낱낱이 해부하는데 집착하는 게 좋은 거 같지 않았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고.

   

혜민: 맞아. 나도 처음 스피노자가 정의한 감정에 대한 글쓰기를 할 때 감정별로 분절해서 쓰는 게 어려웠어. 스피노자의 정의에 들어맞아야 할 것 같고, 한 가지 감정씩만 쓰는 거라, 오히려 자연스럽게 쓰기가 어렵더라고.

아, 그리고 너는 사업하면서 속내를 들키지 않아야 유리할 때가 많았고, 그래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잖아. 이 작품은 여러 가지 감정을 드러내고, 인식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때? 또, 작품하고 난 다음에 감정에 좀 더 솔직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네.

윤정: 나는 여전히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인 편이야.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보니 말이야.

그런데 내가 가졌던 문제는 나도 내 감정을 몰랐다는 거지. 그건 큰 문제가 됐던 것 같아. 언니 말대로 내 감정을 인식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 철학수업을 듣고 감정 글쓰기를 하면서, 감정이라는 것이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올라오는 그 어떤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 감정을 누르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있는지도 몰랐던 것 같아.

그걸 깨닫고 작품을 했는데, 작품을 하고 난 뒤에는 ‘다른 사람도 그렇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개인적인 이유나 생각으로 작품을 했는데, 그걸 꺼내 놓고 나면 뭔가 내가 한 작품이지만 다시 내가 관객이 되어서 객관화된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 말고 다른 사람도 그렇겠구나’하는 생각까지 미치더라고. 그런 점은 좋아.

혜민: 맞아. 감정에는 죄가 없다! 감정은 나에게 어떤 경험이나 상처가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단서라고 생각해. 나아가, 어떤 욕망이 있는지도 알려주는 단서 같아. 난 뭔가 깨달을 때, 꽤나 격한 감정(?)이 동반되더라고.ㅋ

몇 개의 감정을 묶어서 보니, 정면 얼굴만 나타나 있는 게 아니네. 오른쪽 측면, 왼쪽 측면 얼굴도 표현이 되어 있는 게 색다르네. 이 작업은 사전적으로 도안을 그리고 한 건가?

윤정: 응, 참고할 사진들을 수집해서 어느정도 스케치를 하고 시작했어.

다만 네온사인이 교차하고 중첩되는 부분은 미리 계획할 수 없었는데, 생각보다 네온사인 두께가 두꺼워서, 교차하고 중첩되는 부분은 그때그때 스케치를 수정해서 조정하면서 했어. 매일 몇 시간씩 무릎 꿇고 곡마루로 철사들은 조명 구부리고 목 아프고 허리 아프고 죽을 것 같이 힘들게 했는데 하고 나니까 좋더라.

혜민: 철학수업 와서 생성하고 표현하는 게 너무 멋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좋아. 그리고 뭔가 표현하고 싶을 때, 누군가는 언어를, 누군가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그런 ‘다름’도 좋아. 이 작품 어디 전시해 볼 생각은 없었어?

윤정: 사실 인스타에서 이 그림과 어울린다고 생각한 바(bar)가 하나 있었어. 갤러리를 겸용하는 바였는데, 조명이 좀 어두워서 내 작품이랑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더라고. 딱히 방법도 없고 생각만 하는 게 좀 지겨울 때쯤 나는 그냥 무작정 가보거든. 물론 손님으로 언제든 가볼 수 있는 곳이었지. 마음 속으론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만.

혜민: 오, 역시 진격의 신윤정!

윤정: 막상 가니까 사장이 있는 게 아니고, 꽤 큰 회사 차원의 에이전시더라고. 내가 생각한 건 그냥 사장이랑 나랑 마음이 맞아서 뭔가 진행되는 거였는데.ㅋ 너무 요행을 바라는 것 같지만, 의외로 일을 그렇게 진행했던 적이 좀 있어서, 이메일 같은 절차를 좀 무시하긴 해. 성격이 급한 건지, 만나서 부딪히면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어. ‘왜 안 돼?’ 같은 생각이 있어서 쫄리면서 시도해봐. 사업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부딪히면서 ‘적극성, 절박함’ 이런 게 통한다는 걸 경험하기도 했거든.

그 날 하루는 즐거웠어. 바텐더가 음악감독이었는데, 폰으로 내 작품도 살짝 보여주고, 인스타 계정도 받고, 그 음악감독 작품자랑도 좀 듣고. 회사 이사 명함도 받았는데, 바텐더가 포트폴리오 보내 보라고 하더라고. 그러고 서비스로 맛있는 칵테일도 먹게 되어서, 즐거웠어.

그리고 깨달았지. 내가 총알이 준비가 안 되었더라고. 어떻게 보면 기본인 포트폴리오도 없고 말이야. 뭣도 없는데 가 보긴 잘한 것 같아. 뭣도 없다는 걸 알게 됐거든.

혜민: 오, 전시를 한 건 아니었지만, 결국 그 날의 일이 작품사이트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구나.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내가 인식하고 예측하지 못한 데서 오기도 하는 게 흥미로워.

최근 윤정이 너는, 혼자 몰두하는 시간과 누군가를 마주치러 가는 순간이 균형을 잡고 교차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아보이고, 내게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해. 나도 아주 사소한 행동이 여러 변수들을 만나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 행동을 계속 하게 되기도 하고, 기대했던 것과 어긋나서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또 다른 기쁨이 있기도 하다는 걸, 점차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아가고 있어.

 

[Obession(강박) & Hysteria(히스테리)]

혜민: Obsession(강박)과 Hysteria(히스테리)는 메이커스 팝업 전시에 전시했잖아. 전시하기로 결정한 다음, 주제를 잡은 거야?

윤정: 응, 아는 지인이 해보라고 기회를 줘서 일단 참여하기로 했고, 뭐할까 하다가 그냥 떠오르는 걸 만들었어. 고민을 하긴 하는데 사실 시간을 끌게 돼. 그러다 그냥 영감이라고 해야 하나(쫄린 건가?), 어느 날 번뜩여. 종종 번뜩이지만 실행력이 없어 사라진 것들이 아주 많을 듯(웃음). 일단 그냥 시작하면 달리는 기관차처럼 저절로 하게 되는 것 같아. 그렇지만 언제나 시작이 좀 어렵지!

혜민: 이 두 작품은 짝을 이루어서 대비되어서,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났어. 표면 처리, 빛을 쓰는 방식, 색감 등의 측면에서 대조되는 게 눈에 확 들어왔거든.

Obsession은 매끄럽게 표면을 처리한 반면, Hysteria는 거칠거칠한 표면의 소재를 썼어. Obsession은 중앙부에 커다란 원 모양의 형광등을 썼고, Hysteria는 표면에 작게 홈을 파서 은은한 빛이 드러나도록 했고. 또, Obsession은 어두운 바탕에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녹색 물감이 덧칠되어 있는 반면, Hysteria는 희미한 색을 썼고.

표현 방식의 착안 과정에 대해서 좀 들어보고 싶어.

윤정: 처음에 ‘강박’과 ‘히스테리’ 이런 주제로 시작한 건 아니고,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격체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어. 흙으로 조소를 할 때는 실재하는 사람을 만드는데, 그게 아닌 ‘관념(상상) 속 인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거든. 캐릭터를 떠올리다 보니, 반대 성향을 잡게 되더라고. 당초에는 두 작품을 연관시키려는 의도는 없었어. 인격체 1, 인격체 2, 3, 4, 5… 쭉쭉 가는 건데 두 개만 만들고 시간이 다 되어버렸어.ㅋㅋ 캐릭터를 잡다 보니 익숙한 ‘강박적인 캐릭터’, ‘히스테리적인 캐릭터’, 이렇게 큰 가닥으로 잡힌 것 같아. 제목은 나중에 붙였어.

 

같은 강박증자라고 해도, 결이 조금씩 다르잖아. 그런 것처럼 더 많은 다양한 작품을 해볼 수 있을 듯해. 내가 좋아하는 david-altmejd 작가가 있는데 그 사람은 ‘토끼인간’ 같은 것도 만들어.

혜민: 오, 처음에는 한 쌍을 생각하고 만든 건 아니었구나. 네가 만든 다음 인격체들도 궁금하네. 이것도 존재하고 있지 않아서, 네가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거구나.

처음 의도는 아니었지만, 작품 한 쌍이 강박과 히스테리가 품고 있는 문제를 정말 잘 드러낸 것 같더라. 강박은 레이더를 세우고 높은 곳을 향해 가느라, 타인을 다 미끄러지게 하고 본인은 공허해지고. 히스테리는 수용체가 발달해서 잘 느끼지만, 자기를 드러내지 않아서 상처가 많고, 어둠 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네가 그동안 너와 이질적인 사람들을 이해하느라, 엄청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윤정: 말을 꺼내기가 좀 그런데, 별로 좋은 내용은 없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표현했다기보다, 사실 어두운 면을 많이 표현한 것 같아. 내가 인간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게 익숙한 건지, 겉으로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 안 그래 보이는 게 많아서. 그냥 보이고 느끼는 대로 만들어 봤어. 강박증자의 공허함, 히스테리의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은 시작 지점에서 기획한 거라 의도한 거고, 나머지는 느낌으로 채워 나갔어. 강박증자 같은 경우 만드는 과정에서 ‘경직됨, 괴로움, 무게감, 공허하지만 끝없는 목표’ 등등의 느낌을 내보려고 했고, 히스테리는 ‘내면의 의심과 냉소, 까칠함, 우월함, 방어적인 모습’ 그런 느낌을 표현해 보려고 했어. 내 생각에 모든 내면이 전부 이타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은 매우 드물 것 같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모두 있겠지.

언니의 해석도 참 좋은 것 같아. 언니는 항상 이해해 주려 하고, 명암을 동시에 봐 주려고 하니까. 이유 없는 어둠은 없을 테니 그런 시각은 참 배울 점이라고 생각해.

혜민: 아이고, 과찬이네. 감사합니다 ㅋㅋㅋ 나도 내면이 전부 이타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 자체가 내가 더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을 제어한 면도 있었어. 흠결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난 절대 못할 것 같았거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에서, 좀 더 이타적인 부분을 늘려가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

작품 자체에 대한 얘긴 아니지만, 지인 찬스로 작품을 만져볼 수 있어서 좋긴 하더라. Hysteria의 경우 만졌을 때 거칠거칠한 질감을 느꼈는데, 그게 감정을 열어 두는(?) Hysteria의 느낌으로 와닿더라고.

윤정: 만지면서 감상해주는 게 만든 나도 좋았어. 더 많이 느낄 수 있으니까, 더 알아주고 공감해 줄 수 있을 거 같아서. 언니가 말한 거랑 비슷한 결인데, 내가 표현할 때 느낌은 좀 ‘까칠하고 예민한 느낌’이었던 거 같아. 실제로 더 많은 걸 느끼겠지.

언니가 만지면서 감상한 것에 대해 얘기해서 생각난 건데, 내가 무언가를 만들 때 ‘시각+촉각’을 쓰니까. 눈으로는 잘 안보여도 만지면 바로 알거든. 눈으로 보이지 않는 홈이나 흠 같은 걸 만지면서 잡아내. 입체의 깊이감도 시각보다 몸을 움직여 느끼는 게 더 직관적이거든. 그래서 내가 그림보다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혜민: 오, 멋진 얘기네. 너와 얘기하면 이런 거 알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어느 철학자가 촉각이 가장 기본적인 감각(원시적인 감각?)이라고 했잖아. 많이 공감했어. 시각, 미각처럼 수용체가 한 군데 집중되어 있는 게 아니라, 온몸이 수용체니까. 태어났을 때부터 느낄 수 있는 감각이기도 하고.

특히 요새 내가 한계를 느끼고 있는 부분과도 연결되어서, 네 얘기가 더 좋네. 난 효율적이어야 하는 직장에 오래 있었고, 그 이전에 효율을 다소 중시하는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 하나의 대상을 여러 감각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느끼는 걸 잘 못한다고 느꼈어. 예를 들어, 난 동네 뒷산을 가면 앞을 보고 가지, 들려오는 새소리 이런 걸 잘 못 느끼거든.ㅋ

윤정: 나도 일하면서는 적당히 빨리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무언가를 느낀다는 생각을 못해본 것 같아. 감각도 적당히 빨리 하는데 쓰이고, 어느 선에서 끊어버려야 하는 상황에 계속 놓였어. 그게 항상 좀 아쉽고,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만족스럽지 않으니까 계속 비는 곳이 있더라고. 그래서 작품을 하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좋더라고.

혜민: 오, 진짜 너무 공감돼. 나 퇴사하고 나서 그게 제일 좋더라. 사유와 감정들을 적당한 순간에 끊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거. 예전에는 동일한 원만 계속 그리고 있었다면, 지금은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느낌이야.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새로운 것을 접할 때도 그 순간에 오래 머물러 있어도 되어서 좋아. 그래야 뭔가 생각과 감정이 확장되는 느낌이야. 너도 늘 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했으니, 지속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

윤정: 그치, 적당히 사는 건 미덕이 아닌 것 같아. 여러 갈래로 찢어지고 서서히 미지근하게 죽어가는 느낌이야.

 

[moon]

혜민: 이 작품은 이제까지 네가 만든 작품과 좀 다른 결이라고 느꼈어. 정적이고, 감성적인 느낌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아주 미니멀해서 달리 느끼는 건가? ‘아, 윤정이에게 이런 면도 있네’라고 생각했어.

윤정: 난 달 보는 걸 좋아해. 나한테 달은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인 것 같아. 그 작품을 만든 시절에는 그런 달의 아름다움을 보고 무언가 공허하거나 슬픔을 느꼈던 것 같아. 달이 아름다울수록 상대적으로 ‘시궁창같은 세상에 대한 비극’이나, ‘슬픈 나’가 더 부각되는 것 같아. 자기연민이 불쑥 나와버리는 거지.

혜민: 예전에 철학 배우기 전에는 세상에 대해 환멸을 많이 느꼈다고 했는데, 관련된 거야?

윤정: 응, 나도 사업하면서 치열할 수밖에 없었어. 그 끝에서 무언가 좋은 걸 발견하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했는데, 사업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세상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계층’이 너무 견고해서 내가 발버둥을 치고 어떤 수를 써도 안 된다는 걸 느끼고 난 후, 길을 잃어버렸지. 그래서 깊은 우울에 빠졌어.

그땐 돈을 많이 벌고 여유로워지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 피라미드에서 벗어날 길이 없더라고. 나는 조금 더 벌고 싶은 게 아니었나 봐. 그 피라미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

혜민: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구조’를 벗어나고 싶은데, 거기까지 가려면 착취하고, 착취당해야 하는 아이러니… 어렵게 피라미드 상위층까지 올라간 사람조차도, 소중한 사람들을 피라미드 상위층에 올려놓는 것, 더 나아가면 자기 분야에서 피라미드 하층부에서 상층부까지 올라가는 다른 길을 만들어 주는 것. 여기까지가 한계인 듯해. 피라미드 밖에 따로 섬 하나 만들고 은둔하는 건 가능해도, 피라미드를 부수는 건 불가능한 것 같고.

윤정: 맞아. 나도 정확히 그렇게 생각해. 그럼에도 부서지길 바라는 거지, 모두를 위해서. 한계를 보긴하지만, 너무 거대해서 부서질 것 같지 않지만, 내가 무언가를 하지도 않으면서 말할 자격이 있는지 싶기도 하지만, 부서지길 바라는 내 마음을 꺾지는 않으려고 해.

혜민: 정직하게 말하면, 나도 피라미드가 전복되는 걸 진심으로 원하는지 모르겠어. 소중한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있길 원한다고 하면서, ‘피라미드가 전복되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돼. 기득권(학벌, 자격증, 돈 등)을 완전히 버릴 때 내가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두려움, 그 때도 타인을 고려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이건 내 과제겠지. 네가 구조의 공고함 때문에 좌절했다고 했는데, 그 공고함에 나의 두려운 마음도 기여했어. 말하기 어려웠지만, 남겨두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쓴다.

윤정: 나는 구조의 문제를, 한 개인에게 정합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모든 인간은 모순적이지. 구조의 문제에 대해서, 한 개인에게 모순 없는 의견을 내고 그 의견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 모순 없는 인간이 되려고 한쪽으로 치우쳐 가 버리는 인간을 양산하는 부작용만 있지 않겠냐는 거지.

그건 모두를 더 슬프게 하고 타협하게 만드니까. 나는 언니가 학벌, 자격증, 돈이 있어서 좋아. 그게 있어서 좋다기보다, 언니가 좋은데 언니에게 도움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좋은 거지.

기득권이 아닌 사람은 나를 포함, 잃을 게 없어서 말하기 더 쉬울 뿐이지. 그리고 전복은 다시 위에 서고 싶다는 말이잖아. 그럼 누군가 또 아래일 거고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을 거야. 아마 전복이 아닌, 완전히 평등한 이상향의 세계는 오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는 언니랑 꽤나 평등한 관계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우리가 구조를 넘을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언니랑 있으면 그 이상향과 비슷한 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해. 구조 앞에 우리 관계가 더 먼저고 그러니 그 믿음으로 우리가 구조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

혜민: 엄청 고마운 얘기네. 나도 구조 앞에 관계가 먼저라고 생각해. 난 올해 확실히 느꼈어. 처음에는 작게 시작됐어. 책을 읽을 때, 진규쌤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책장이 넘어가는 경험이었어. 그리고 그게 점점 커졌어. 나와 다른 삶의 맥락과 기질, 의사소통 방식을 가진 친구들과 오해를 하면서 계속 대화하고, 공동으로 작업을 해 보려고 하면서, 앞으로 새로운 틈과 마주침이 계속 열리겠다는 느낌을 받았어. 난 요새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누군가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걸 어느 때보다 예민하게 느끼고 있어.

아직 미약한 생각이지만, 나도 너를 비롯한 철학수업 친구들에게 틈을 내 주는 사람일 수 있게,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잘 찾아서 갈고 닦아야 한다는 생각도 해. (쑥스)

돌아가서, 철학을 배운 지 꽤 되었고, 우린 기쁨과 고통이 붙어 있다는 것, 냉소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걸 배우잖아? 그 후에도 계속 그런 마음이 들어?

윤정: 공허의 끝을 보고 나면 다시 그쪽으로 돌아가기 너무 쉬운 것 같아. 아무것도 없는 허무주의 말이야. 여전히 감정 상태가 안 좋아지면 그런 마음이 불쑥 올라오기도 해. 물론 빈도도 줄고 강도도 덜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바닥을 봤기 때문에 의미에 더 진실하고 절박해지는 장점이 있기도 해. 지금 살아있지 않으면 너무나 죽은 것 같거든. 사소한 것에 기쁨을 잘 못 느끼는데, 유일한 방법이 지금 살아있는 거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모든 작은 것도 다 의미 있어 보이거든. 다른 사람들은 항상 이런 상태일 것 같아서 오히려 반대를 모를 수도 있겠다. 운동이 지금 현재 살아 있기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 꾸준히 하려고 해.

혜민: 네가 왜 작업이나 운동할 때 전력을 다해서 소모해 버리는지 이제 좀 알겠다. 그러지 않으면 또 공허로 돌아갈 때가 있구나.

윤정: 그런 것 같아.

혜민: 이 작품에 대한 길웅이 설명 중 달무리에 대한 부분이 좋았어. 어둠과 빛이 서로 교감하는 공간이라는 얘기, 달무리의 미세한 색감 변화는 달의 밝음과 밤하늘의 어둠에 주목하지 않으면 쉽게 놓칠 수 있다는 얘기 말이야. 다정한 얘기였어.

네 작업실 갔을 때, 네가 달무리의 보랏빛을 잘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썼다고 얘기한 게 기억나. 어떻게 표현했는지 얘기해 줄 수 있나? 누군가 궁금해할 것 같아서.

윤정: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는데, 아크릴 물감은 금방 말라서 좀 거친 표현이 나올 수 있어. 그래서 Retarder라고 아크릴 건조 지연제를 섞어서 빨리 굳어 버리지 않게 하고, 붓을 아주 미세하게 힘 조절을 해서 여러 번 펼쳐가면서 색이 조금씩 부드럽게 섞인 은은한 느낌을 살리려 했어. 조금 뭉치거나 얼룩진 부분이 있으면, 여러 번 붓을 왔다갔다해서 부드럽게 색을 혼합하고 펼치는 거지. 그래서 수평으로 바닥에 놓고 작업했고, 어깨가 매우 아팠던 기억이 있어.

 

[눈산]

혜민: 이 그림에 대한 길웅이 설명 보고 좀 놀랐어. ‘험준하여 위험할 것을 알지만 오르지 않으면 죽어서 후회하게 될 살아 있는 순간’이라는 부분 말이야. 이거 5년 전 작품인데, 최근의 ‘야생성’ 작품과 같은 선상에 있어서 말야. ‘야생성’도 살아 있는 순간(복싱)에 대한 작품이라고 했잖아.

윤정: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도 최근에 한 ‘의미 있는 발견’이었어. 예전부터, 무언가 비슷한 결의 생각을 했다는 걸 포착했거든. 그걸 ‘살아있음’이라고 언어화하고 나니까 생각도 잘 정리되면서 좀 더 선명해졌어.

혜민: 나도 그런 거 발견할 때가 있어. 최근에 어렸을 때 읽은 소설이나 만화를 가끔 읽는데, 왜 그 소설이나 만화를 좋아했는지 알겠더라고. 그 때나 지금이나 관심사나 지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더라. 난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중핵은 지독히도 안 변했더라.

윤정: 그러니까, 뭔가 그 중핵을 잘 탐구하는 일이 나를 알아가는 일인 것 같아. 쉽진 않지만.

혜민: 그런데 부제가 ‘관념 속 산은 존재하는가’로 되어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네.

윤정: 아, 그 시절 철학수업에서 관념론을 배울 때였는데 황금산이 예시로 나왔어. ‘우리는 황금과 산을 아니까, 황금산이 실재하지는 않지만 관념 속에서 황금산을 떠올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 그 때 나는 관념이라는 것이 굉장히 매력 있다고 생각했어. 내가 하는 창작들이 머릿속에 관념을 떠올리고 실재하게 만드는 일들이어서, 그 관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무언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건 아니지만, 떠오르는 걸 해보고 싶었어. 그 때 떠오른 게 존재하지 않는 ‘얼음산’이었지. 나한텐 그 때 세상이 황금산이 아니라 얼음산이었나봐. 나도 왜 했는지 정확히 모르겠어.

혜민: 뭔가 멋진데.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않았지만, 네 머릿속에 있는 걸 결국 물리적으로 실재하게 만든다’라. 물리적으로 실재하게 되면, 누군가에게 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누군가가 또 너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생기니까.

윤정: 오 그러게.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는 있었나 봐. 의도한 건 아닌데 어쨌든 누구한테 보여주긴 하니까. 언니한테 보여주면서도 그런 경험을 한 것 같아. 보통 내가 작품을 많은 사람한테 보여주거나 해 보지 않았거든.

며칠 전에 발견했는데, 언니가 위에 말한 그런 걸 좋아하는 거 같아. 실재하지 않는 걸 만들어 내는 것. 그런 게 기획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렸을 땐 그냥 레고 조립이었던 일이, 성인이 되고 나서는 기획 분야로 드러나는 거 같아. 작품도 어떤 면에서 기획의 일부잖아. 우연히 며칠 전에 내가 10년 전에 작성한 창작 워크숍 제안서를 봤거든. 물론 부족한 부분이 더 보이긴 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부분에서는 크게 변한 게 없는지 지금도 큰 틀의 생각은 그대로더라고. 물론 나는 회사에서 하는 큰 기획은 잘 몰라.

혜민: 너와 대화를 하고 네 글을 보면서, 네가 작품할 때 가장 타협하지 않으려고 하는 걸 느꼈어. 너와 대화하고 네 글을 보면서, 삶의 조건이나 관계 문제로 위축감을 느낄 때도 있는데, 작품이나 기획은 너에게 가장 큰 자유를 주는 것 같았어. 어렸을 때도 그래서 더 좋아했던 게 아닐까, 한번 혼자 생각해 봤네.

윤정: 오, 그런 것 같아. 어떤 새로운 걸 떠올리고 기획하고 실행하는 걸 좋아해 온 것 같아. 어렸을 때는 좀 더 순수하게 그랬던 것 같고, 점점 효율과 인정 같은 것 때문에 방향이 휘어져 버렸었지.

혜민: 그림으로 그린 부분은 유화물감으로 한 거야?

윤정: 아니, 아크릴물감으로 한 거야. 유화물감의 경우 재료가 비싸기도 하고, 필요한 게 좀 많아서 복잡해. 그래서 나도 써보지는 못했어. 요새는 아크릴물감도 지연제나 보조제 등을 써서 유화 물감의 느낌을 낼 수 있다고는 하더라.

혜민: 그렇구나. 그림으로 된 부분이 텍스쳐가 좀 더 있어도 잘 어울렸을 듯? 네온사인이 둘러싸고 있어서, 텍스쳐가 있으면 좀 더 입체감이 있었을 듯. 아, 그리고 파란색 네온사인이 그림이랑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파란색 불빛 때문에 산 표면이 눈이라 얼음처럼 광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윤정: 그런 질감을 마띠에르라고 하던데, 언니가 말한 질감이 있었으면 더 입체적이고 좋아보이긴 하겠다! 얼음광이라고 표현한 감각이 맘에 든다. 그런 반짝이면서도 은은한 느낌을 나도 느낌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표현해주니까 너무 맘에 드네.

원래 네온사인은 쨍한 색감이라, 형형색색으로 다른 톤의 색을 함께 쓰지, 이렇게 비슷한 색을 쓰지 않아. 이 작품에서는 비슷한 색조이지만, 약간씩 다른 색으로 써 봤어. 그래야 그림이랑 좀 어울릴 것 같더라고. 빛은 색감으로 치면 이미 너무 강렬하잖아. 톤을 맞춰서 너무 튀지 않게 해보고 싶었어.

그리고 캔버스 옆면까지 네온조명을 넣었는데, 그림에서 끝없이 높고 끝없이 광활한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캔버스의 한계로 뚝 끊기는데 불편하더라고. 그래서 캔버스 밖에서도 더 광활하게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서 옆면까지 빛이 이어지게 작업해봤어.

혜민: 표현적인 면에서, 2차원인 그림과 3차원인 조소의 경계를 넘으려고 하는 시도가 꽤 있었던 것 같아. ‘야생성’에서 캔버스를 부수어서 표현한 것도 그렇고, ‘감정들’에서 네온사인과 색을 겹쳐서 표현한 것도 그렇고.

윤정: 오 좋은 표현인 걸. 고마워! 나는 2차원의 작은 평면이 좀 답답하긴 해(2차원이어도 겁나 큰 캔버스는 또 다른 느낌이긴 하더라. 크기가 크면 지각할 때 평면이 공간이 된다고 해야 하나). 뭔가 그 답답함 때문에 틀을 깨고 싶은 삐딱한 면이 있는 것 같아. 그런 성격이 사회생활 영역에서는 안 좋은데, 창작할 때는 나쁘지 않게 위트로 표현돼서 좋아.

혜민: 조금 딴 얘기지만, 대학 때 애니메이션 단편 만들었다는 얘기, 음악 만드는 걸 배웠다는 얘기, 네 작업실에 쌓여 있는 각종 도구들의 사용법에 관한 책, 이런 것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 좋아하는 걸 표현하기 위해, 표현 매체와 방법을 배운다는 게 당연한 얘기같지만, 난 한 번도 못해 본 것이라. 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걸 제일 잘 표현하는 방식이나 매체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표현 방식(학문)을 배우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생기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살아왔으니까. 그 때도 잘못된 느낌은 들었지만, 이미 망한 것 같아서 빠져나오지 못했음 ㅋㅋ

윤정: 아 그래?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접근이네. 이거에 대해선 더 얘기해보면 좋겠다. 나도 이야기하고 싶은 걸 찾는 것이 막연해서 표현 방식에 집착한 게 아닐까 싶어서 언니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해.

혜민: 네가 작곡을 배우기 전에 악기를 먼저 배웠어야 했다, 관념으로 생각하기 전에 감각으로 느껴야 했다고 글 쓴 적이 있지만, 다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나도 최근에 생각이 바뀐 부분인데, 표현방식을 배우다 보면 확실히 더 잘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게 있을 듯? 좀 더 확장된 감각으로 볼 수 있는 게 많아지면, 하고 싶은 얘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너무 게걸스럽게 배움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야.

윤정: 맞아. 그렇게 해봤기 때문에 지나서 알게 된 거니까 그 과정들이 의미는 있었지.

혜민: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 벽면 장식으로 잘 어울려.ㅋㅋ 벽면 한 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게 그려지네.

윤정: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가끔은 하나밖에 없는 작품은 팔기가 또 싫다? 내 작품을 대단하다고 여겨서 그러는 게 아니라, 작품을 한 그 의미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싫은 것 같아. 그저 ‘예쁘네, 멋있네’라고 하며 스쳐지나가면 조금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의뢰를 받아서 하는 작품은, 또 신선한 게 잘 안 나와. 아무래도 좀 애정이 덜하다고 해야 하나. 표현이 어려운데, 뭔가 마음을 떼고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게 또 티가 나는 것 같더라고. 물론 나만 알 수도 있지! 좀 딜레마야. 그래서 죽어서 작품이 팔리나?

혜민: 미안, 내가 실례를 했네.ㅋ 네가 밥벌이도 같이 고민하는 것 같아서, 해 본 말이긴 해. 작품에 철학과 감정과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 있는데, 누가 그런 걸 전혀 못 보고 ‘예쁘다, 멋있다’ 그렇게 해 버리면 정말 싫을 것 같긴 해. 상업적인 공간에 있으면, 작품을 도구적인 의미로 생각할 테니, 작품의 맥락을 생각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겠지.

윤정: 나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라 전혀 실례는 아니야. 같은 고민을 해주니 고맙지. 생각해 보니 그건 사실 내 몫이기도 해. 그런 공간에서도 내 작품이 좋다면 누군가는 알아볼 테니까. 그리고 모두가 알아보길 원하는 것도 아니긴 해. 그럴 수도 없고. 내가 좋고 알아봐 주길 원하는 몇몇만 좋아해 줘도 나는 충분히 좋아. 다시 생각해 보니까 ‘예쁘네, 멋있네’라는 수준으로 떨어져 버리도록 선택한 나의 상황이 싫은 것이 더 적절하겠다. 누군가의 평가의 결과보다 내가 그렇게 되게 선택하는 것이 싫다고 표현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혜민: 나도 이 부분은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대가관계나 이해관계가 없어야 예술의 진정성이 담보되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너와 비슷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철학 배우면서 ‘우연성, 마주침, 틈’에 대해 많이 들어서 그런지 좀 다르게 생각되기도 해. 또, 예술의 진정성이라는 것도, 일부는 예술가의 자존심 때문에 나오는 말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상업공간을 떠올려 보면 감성적으로 어지럽고 피로하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이라도 고객눈을 사로잡기 위해 마구 아우성치는 느낌이야. 그런 공간에서, 감상하고 감응하고 음미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듯.

윤정: 이 부분에 대해서 느낌은 있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거든. 얼마 전 책에서 잘 설명해 놓은 걸 읽어서 기뻤어. 책은 강신주의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 이야. 자본주의는 ‘불가능한 교환’을 모두 ‘가능한 교환’으로 바꾸면서 모든 것이 교환 가능하다는 환상을 우리에게 주입한다. 단독적인 것은 교환 불가능하다. 교환가능성은 공동된 가치 즉 일반성을 전제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은 판매할 때보다 선물할 때가 좀 더 기쁠 것 같아. 대체 불가능한 단독적인 것으로 남길 바라. 형식에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한데, 형식이 의미를 훼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

혜민: 네가 카톡으로 보내준 인용 부분 읽어봤어. 모든 인간은 단독적이나, 자본과 권력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들을 교환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인간을 지배한다는 얘기구나. 그렇기에, 불가능한 교환을 해서 자본과 권력에 대항해야 하고, 인간적인 관계가 전제되어 있는 선물은 ‘불가능한 교환’이란 얘기네. 자본과 권력의 유혹이 엄청나게 심한 게 사실이니까, 유념할 얘기이긴 하지.

하지만, 너무 가능성을 닫아두지는 않았으면 해. 마침 어제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탔는데, 주문이 3400배가 폭주했다고 해. 어떤 이들은, 개탄할지도 모르지. 소설가에도, 문학에도 관심 없다가 ‘노벨상’ 딱지 붙으니까 관심 가진다고. 어떤 이들은 지적 허영으로, 과시욕으로 책 사기도 하겠지. 심지어는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타는’ 성공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구매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어떤 이는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거야.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제주 4. 3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할 테고.

마찬가지로, 투자수단으로 작품을 구매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 지나면 궁금해져서 예술에 관련된 책 한 번 읽어보다가 진정성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작품 구매한 사람 아니더라도, 작품 구매한 사람의 가족이 그게 계기가 되어 예술에 진짜 관심이 생길 수도 있고. 타협과 유연함은 구분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네가 부러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완전무결하게 순수하게 시작하는 건 어려울 수 있어.

윤정: 그럼그럼. 언니 말대로 타협과 유연함에 대한 기준이 어려운 것 같아. 그들의 행동을 바꾸거나 비판하거나 그러고 싶은 건 아니었어. 그냥…. 싫은거야. ㅋㅋㅋ 언니의 이야기에 모두 동의해. 그런데 그냥 그런 게 싫어서 한번 얘기해 봤어. 더 이해하고 넓은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말야.

세상 사람들보다, 내 자신의 기준에서 순서가 바뀌지 않길 바라는 것 같아. 아마 내가 단단하지 않아서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릴까 겁내서 더 경계하는 것 같기도 해. 그렇게 되기가 너무 쉬웠거든. 언니가 위에 말한 사례들은 순서가 바뀌어 보이진 않아서 좋다고 생각해.

혜민: 무슨 말인지 좀 알 것 같아. 스스로에 대해서 엄격한 기준을 세우는 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 어쩌면 끝까지 밀어붙여 본 사람만이, 유연하게 조절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윤정: 얼마 전 언니랑 이야기하다가, 언니가 나한테 이상주의자라고 했는데, 그게 좋았어. 사실 내 삶의 맥락에서 이상주의자라고 하면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언니 말을 듣다 보니 나는 이상주의자더라고. 언니 말에 하나 틀린 게 없었거든. 이상주의자의 주변사람들은 힘드니까 말하기 어렵긴 한데. 나는 이상주의자가 맞는 것 같아. 사실 내 이상주의는 유치한 욕망인 것 같지만, 아직 그게 좋기도 하고. 내가 부러질 수는 있겠지만 이상주의자만이 현실 밖의 길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해.

혜민: ‘이상’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면, 이상주의자가 큰 힘을 가진다고 생각해. 특정 상황에서 이상적인 것을 잘 찾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이상을 찾는 이유가 타인을 향한 것이라면.

윤정: 이데아(신념?)와 사랑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 같네. 그 부분을 유념해야겠다. 영화 ‘허공 위의 질주’를 떠오르게 하는 말이었어.

혜민: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여러 예술작품들이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이용되거나, 굉장히 가볍게 소모되기도 하잖아? 예를 들어, 클래식이 광고음악이나 아이돌 음악에 사용되기도 하고. 그런 것들도 싫은 편이야? 아니면 작품 의도가 어느 정도 알려지고 난 후엔, 괜찮아?

윤정: 음, 내 작품이 그렇게 될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해 봐서. 공개된 후의 사용이나 평가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의도를 누가 알아봐 준다면 좋겠지! 그런데 딱히 의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의도는 아니고 표현하고 싶은 어떤 게 있는 것은 맞는데, 말이나 글로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언가 쓰긴 하는데. 작품을 할 때도 내가 느낀 것만큼 표현이 안되어서 불일치나 경멸이 느껴지는데, 그걸 말이나 글로 하면 훨씬 더 많은 의미가 탈락되어서 산으로 갈 때가 있는 것 같아. 작품으로 읽혀진다면 가장 좋겠지.

혜민: 이번 작업 얘기 쭉 들어보니까, 어느 정도 의도를 가지고 하는 부분도 있지만, 작품을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도 많이 나고 그래서 ‘의도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글 여러 편으로 나누어 쓸 때는 계속 새로운 생각이 나서 ‘당초 생각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기도 하고, 그래서 글 완성하기가 힘들 때가 많아. 짧게 인용된 걸 읽은 거라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데리다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재현된 것 안에서의 원본이 아니라 과정과 운동, 생성과 사건’이라고 했대. 네가 조소하는 과정을 들었을 때도 그렇고, 요새 전시 좀 보러 다니면서 많이 공감하게 된 말이었어.

글은, 작품의 보조적 수단(?)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 싶어. 네가 만드는 작품, 쓰는 글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 전체적으로 다 보고 나서, 너라는 사람을 좀 더 잘 알게 되었어.

어떤 예술가들은, 작품에 다 있는데 뭘 중언부언 붙이냐고 할 수도 있는데, 난 작업과정을 공유하는 게 의미가 있어 보여. 관람자들의 예술에 대한 갈망이, 예술적인 삶을 사는 것,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시간 내서 오는 관람자들에게, 조금 다정해도 될 것 같아. 그건 타협이 아니라, 애정인 것 같거든.

윤정: 이번에 작품 사이트를 만들고 나서 언니가 말하는 것들을 좀 더 이해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어. 무언가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보니까 더 많은 의미가 보이더라고. 내 작품을 보고 비슷한 걸 느낀 사람이 있는 것도 신기했고, 한편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이니까 내가 못 보는 측면을 봐 주는 것도 굉장히 흥미로웠어. 이런 경험으로 애정이 생겨서 자연스레 아카이빙에 대한 게으름이 좀 줄어들 것 같아.

그 전에는 막연했는데, 내가 표현한 것과 다른 걸 느낀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더라고. 작품이 완성되면 뭐랄까, 내가 한 것 같지 않다고 해야 하나. 객체가 되잖아. 작품을 만들 땐 하나가 되어서 하지만, 완성이 되면 나도 거리두고 볼 수 있게 되거든.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는 없지만, 평가가 아니라 감상을 나누니까 같은 관람자 입장에서 들어서 재밌더라고. 언니랑 다른 작가 전시 보면서 이야기하면 재밌는 것처럼. 내가 개입되어 있으니까 좀 더 재밌는 정도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내가 느낌으로 무의식적으로 표현한 것들을 언어화 해줄 때 굉장히 놀라웠어. 작품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한 것 같아.

혜민: 맞아. 술술센터에 네 전시 보러 갔을 때, 우연히 M을 만났잖아? 그 때 M이 네 작품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고, 네가 대답해 줬는데, 그게 참 좋았어. 난 사전에 너와 얘기를 해서, 네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잖아? M이 네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상당히 근접한 얘기를 해서 놀랐어. M의 개인적인 삶의 맥락(프로그래머)에서 나온 얘기도 흥미로웠어. 내가 보기엔, 너도 그 감상을 듣고 좋아 보였어.

윤정: 오오, 신기하다. 나도 요즘 ‘영향력’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결을 칠 수 있게 됐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상호적이고 동시적이라는 것. 인간은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예전엔 영향을 주고받고 싶은 모든 것을 권력욕으로 이해했어. 큰 걸 작은 그릇에 담았던 거지.

혜민: 대부분의 관계에서는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서 지배하고 싶은 욕망으로 영향을 주고 싶어하니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지. 또, 학교나 회사에서는 정말 상대방을 위해서 뭘 하더라도, 오해하고 오해받기가 너무 쉬운 것 같아. 반면,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건, 자유롭게 구속되는 게 아닐까 싶네. 기꺼이 상대방에게 취약해지려고 하며, ‘상대방에게 영향을 줄 나’를 의식하게 되니까 말야.

처음 얘기로 돌아가면, 유명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생성에 활용되는 게 내 입장에서는 감성적으로 진보적으로 느껴져.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서 큰 권위를 가지고 범접할 수 없는 것보다, 그 그림을 활용해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멋진 느낌이야.ㅋ 심지어 원작의 훼손으로 느껴질 정도로, 원작과 상반된 의도를 표현하고 있어도 말이야. 네가 작품을 만들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객체가 된다고 했잖아? 나도 그 때부터는 창작자의 시간이 아니라, 감상자와 잠재적 창작자의 시간이 된다고 생각해.

윤정: 맞아. 작품을 공개한다는 건 내 손을 떠나는 일이라고 생각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모든 결과를 감수한다는 생각을 해. 그런 마음가짐이 아니면 작품을 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열린 가능성 자체에 대한 기대도 생긴 것 같아. 예전에 내가 상업적인 공예작품을 만들면 베끼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열 받았었는데, 작품을 하면 그런 감정은 덜 들더라. 목적이 아예 다른 것 같아. 돈이나 인정 같은 대가가 제일 우선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 애초에 기대하기도 어렵고.

혜민: 역시 하는 과정 자체가 기쁨이 되어야, 나머지 부분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네.

윤정: 예술이라는 게, 너무 크고 넓어서 많은 결과 방법과 종류가 있는 것 같아. 나도 예술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각자만의 정의가 있더라고. 그냥 보는 것은 좋지만, 내가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사실 바깥으로 크게 생각하면 너무 쪼그라들어서 아무것도 못할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냥 나는 내면을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 아직 내가 세상이랑 연결되거나 연결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냥 내가 좋아서 했는데 가끔 피드백을 들으면 기쁜 정도의 상태니까.

이제 대화록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것 같다. 이 대화록이 끝나지 않길 바랐던 것 같아. 그치만 언제나 끝은 나게 되어있지.

모네의 그림처럼 여기 우리의 시간이 담겨 있잖아. 번갈아 수정하면서 그 시간 동안 사건이 일어나고 영감이 생기고 그걸 다 때려 넣었잖아?ㅋㅋㅋ 시간순으로 기록한 게 아니라, 수정으로 덧대어 갔지. 조소 작업할 때도 수정하면 그 이전 것은 남은 것도 있고 사라진 것도 있는데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았는지 알 수 없거든.

그렇다고 다 사라진 것도 아니야. 바탕이 없었으면, 과거가 없었으면 나올 수 없는 결과니까. 물론 우리가 아닌 제3자는 읽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조소 작업을 하는 것처럼 끝을 정하지 않고, 끝이 나게 되는 작업이라 좋았어.

난 잘 몰랐었는데, 요즘 소설을 좀 보면서 글쓰기가 이렇게 다양하고 개성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어. 나는 소설가들의 초기작들이 좋더라. 제멋대로 써서 너무 신선해. 이 대화록을 통해서 언니랑 내가 처음 가보는 길을 같이 걸어서 좋았어.

혜민: 지금 체크해 보니까, 이거 6월에 시작한 거네!ㅋㅋ 띄엄띄엄 했지만, 이렇게 오래 한 줄은 몰랐네.

조소 작업과 이 대화록을 비교한 얘기, 참 좋다. 나도 이 작업, 끝을 정하지 않아서 좋았어. 대화록 작성기간 동안, 철학 수업에서 뭘 배우기도 했고, 새로운 마주침도 있었지. 새로 배운 철학의 명징한 개념으로 우리의 대화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도 좋았고, 새로운 마주침으로 인해 생각이 발전하거나 바뀌는 것도 좋았어. 대화록 쓰면서, 예술이나 미학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 대화록은 마무리되지만, 아쉽지는 않아. 우린 또 각자 여행을 하고, 그 여행에서 잔뜩 이야깃거리를 가져와서, 다시 만날 거니까. 아마도, 멀지 않은 시간에.ㅋㅋ 오늘 눈이 오고 있는데, ‘눈오는 날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

난 요새, 폐호흡이 아니라 피부호흡을 하는 느낌이야. 대기에 여러 항들이 떠다니고 있고, 어떤 상황과 조건이 왔을 때, 그 항 중에서 어떤 걸 꺼내 쓰는 느낌이야. ‘제멋대로 쓴 소설의 초기작이 좋다’는 말도 그 떠다니는 항 중에 하나가 될 것 같아.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격론을 좀 더 내려놓고, 재밌게 해 볼게.

이번 여행을 함께 해 줘서, 고마워!

 

[ 김혜민 소개 ]

혜민은 논리적이고 똑똑하고
사회의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혜민을 그렇게만 본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뒤집어 쓴 이불만 보고 뭘 알 수 있을까.
기껏해야 이불 무늬나 알겠지.

어느 날은 발, 어느 날은 꼬리
가끔 보여주는 진짜 모습이 꽤나 매력적인 사람이다.

혜민은 어떤 사람일까.

그걸 기다리고 알아가는 것이 즐거운 사람!

때론 고양이를 안고 있는 것처럼 귀엽고 다정한 사람이다.
(그치만 안고 있는 그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캬오오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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