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와 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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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발적이다


 

가시와 물집

40 × 30 cm

Acrylic on Canvas, EL-wire Lighting, Paper clay, Resin

2025

SKU: N/A 카테고리:

설명

아무리 보호하려 해도 삶은 우발적이다. 우발적 사건은 괴롭지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가시와 물집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긴장, 감추고 싶지만 결국 드러나는 삶의 흔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물리적 징표이기도 하다. 이 작업은 고통이 단순히 괴로움만은 아님을 말한다. 아름다움 속에는 감춰진 고통이 존재할 수 있고, 그 고통이 이해받을 때 다시 아름다움으로 돌아온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공존하는 삶의 한 단면이다.

   

 

체험하는 것의 의미.
몸으로 하는 것. 사는 것.

[ 가시와 물집 ]

작업실 앞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여기저기 예쁘게 핀 장미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 친구와
함께 앉아 있다가 이제 돌아가자고 빨리 일어나라며 장난처럼 살짝 밀었다. 남자 친구는
장난을 받듯 나를 살짝 당겼다가, 중심을 잃고 나를 잡고 뒤로 넘어갔다.
나를 붙잡는 바람에 둘 다 등받이가 없는 돌의자 뒤의 장미꽃밭에 등부터 떨어졌다. 등
이곳저곳에 가시가 엄청 따끔했다. 다리는 네모난 돌의자 위에 얹어진 채 등으로 떨어져
버려서 그대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몸을 틀어야 일어날 수 있는데, 가시가 박혀 긁힐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이곳저곳의 따가움으로 몸이 움찔움찔했다.
정말 내 세계에선 피곤한 미친놈이다. 늘 선을 넘는다. 꽃은 보는 거로 생각했지, 몸으로
찔리는 거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장미의 가시를 몸으로 체험하고 나니 장미라는 것을
전혀 다르게 느끼게 되었다. 장미를 등으로 감상한 날이었다.

얼마 전 10킬로 달리기를 하였다. 친구는 내 등을 보며 내가 살아온 날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언제나 괜찮은 척하지만, 잔뜩 긴장해 있는 내 등을 보았다고 했다. 연기를 하는
친구라서 그런지, 내 등에서 나를 읽어냈다.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내가 숨길 수
없는 등에서 읽어버렸다.
복싱이랑 운동은 오래 했지만 달리기는 많이 하지 않아서 10킬로 거리는 버거웠다. 손이
따가워서 보니 물집이 있었다. 어? 나 뜨거운 거 만지지 않았는데 왜 생겼지? 알고 보니
달리면서 주먹을 꽉 쥐어서 물집이 생긴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이것도 못 뛰어서 뭘 하겠어’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뛰었다. 굽은 등과
긴장된 목이 뛰면서도 아팠다. 그래도 해내겠다고 요령 없이 힘으로 뛰었더니 손에 물집이
생겼고, 근육통에 3일을 고생했다. 그런 나를 등 뒤에서 보고 뭉클했다는 친구는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도와줄 틈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